돌에 새긴 조선의 밤하늘,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조선이 건국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새 왕조는 수많은 별과 천문 지식을 커다란 돌에 새겼다. 이 석각 천문도가 오늘날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이라고 불리는 유물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북극을 중심으로 펼쳐진 전통 별자리와 적도·황도, 28수의 구역, 하늘과 지상의 지역을 연결한 분야 체계, 천문도의 제작 경위와 우주론적 설명이 함께 새겨져 있다. 단순한 별자리 그림이라기보다 동아시아 전통 천문학의 지식과 조선 건국의 정치적 의미를 한 장의 석판에 집약한 자료에 가깝다.
그러나 이 천문도를 단순히 고구려 천문도의 복제품이나 현대식 별자리 지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모본의 기원과 별의 관측 연대에는 논쟁이 있으며, 공식적으로 1395년 제작 유물로 지정되어 있지만 현존 석각의 구체적인 완성 시점을 세종대로 보는 견해도 있다. 태조본과 숙종본 역시 기본 내용은 같지만 제작 배경과 석재의 크기, 글자와 별의 표현에는 차이가 있다.
이 글에서는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이름과 제작 배경, 석각의 구조, 태조본과 숙종본의 차이, 천문학적·정치적 의미를 자료로 확인되는 사실과 아직 논쟁이 남은 부분으로 구분해 살펴본다.
1. 천상열차분야지도란 무엇인가?
이름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을까?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라는 이름은 여러 개념이 결합된 것이다.
천상(天象): 하늘에 나타나는 형상과 천체
열차(列次): 하늘의 구역인 차를 차례로 배열함
분야(分野): 하늘의 구역과 지상의 지역을 대응시킨 체계
지도(之圖): 그것을 그린 그림
따라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대체로 “하늘의 모습을 차와 분야에 따라 배열한 그림”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여기서 ‘차(次)’는 단순히 순서나 차례만을 뜻하지 않는다. 동아시아 전통 천문학에서는 목성의 운행과 관련된 열두 하늘 구역을 가리키는 전문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분야’는 하늘의 특정 구역을 지상의 나라나 지역과 연결한 점성적 지리 체계였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전통 별자리」)
‘각석’은 무엇을 뜻할까?
천상열차분야지도 뒤에 자주 붙는 각석(刻石)은 글과 그림을 돌에 새겼다는 뜻이다.
천문도는 종이나 비단에 그릴 수도 있지만, 태조대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은 커다란 직육면체 석재에 천문도와 설명문을 새긴 유물이다. 일반적으로 소개되는 대표적인 천문도는 앞면에 있으며, 윗부분에는 원형 성도, 아랫부분에는 천문 지식과 제작 경위를 담은 글이 배치되어 있다.
그런데 이 각석은 앞면에만 천문도가 새겨진 유물이 아니다. 정밀 조사 결과 반대쪽 면에도 또 다른 천문도가 새겨져 있으며, 양면 천문도의 위아래 방향은 서로 반대로 배치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유물 전체의 양면 구조와 우리가 흔히 사진으로 보는 대표적인 앞면의 천문도는 구분하여 설명할 필요가 있다.
반대쪽 천문도가 정확히 언제, 어떤 목적으로 새겨졌는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일반적으로 천상열차분야지도라고 부르는 앞면의 성도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돌에 새기면 제작이 어렵고 무겁다는 단점이 있지만, 종이보다 오래 보존할 수 있고 왕조의 공식적인 지식을 권위 있는 형태로 남길 수 있었다.
오늘날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국가유산청은 이 유물을 조선 건국 직후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제작한 석각 천문도로 설명한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한국천문연구원 「국보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의 3차원 스캔」)
천문도와 별자리 지도는 같은 말일까?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별의 위치를 표시한 별자리 지도이지만, 현대의 일반적인 별자리 지도와 완전히 같지는 않다.
현대 성도는 관측 시각과 위치에 따라 실제로 보이는 별을 찾는 데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반면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별의 위치뿐 아니라 다음과 같은 내용이 함께 들어 있다.
전통 성관의 이름과 연결선
28수의 구역과 수거성
적도와 황도
북극 주변의 주극원
열두 차와 분야
해와 달의 운행에 관한 수치
우주론과 역법에 관한 설명
천문도 제작 경위
제작에 참여한 인물과 관직
따라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단순한 관측용 별자리 그림이라기보다 성도·천문 지식서·왕조 기념물이 결합된 석각 자료라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2. 조선은 왜 건국 직후 천문도를 만들었을까?
천문학은 왕이 맡아야 할 통치의 일부였다
동아시아의 전통 정치사상에서 천문과 역법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었다. 국왕은 하늘의 운행을 관찰하고 정확한 계절과 시간을 백성에게 알려야 했다. 이를 흔히 관상수시(觀象授時)라고 한다.
‘관상’은 하늘의 형상을 관찰한다는 뜻이고, ‘수시’는 백성에게 때를 알려 준다는 뜻이다. 정확한 달력과 절기를 정하고 농사와 국가 행사의 시기를 알려 주는 일은 통치자의 중요한 의무로 여겨졌다.
새 왕조가 천문도를 제작한다는 것은 새로운 국가가 하늘의 질서를 이해하고 시간 체계를 관리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 주는 행위이기도 했다.
천문도는 새 왕조의 정당성과 연결되었다
조선은 고려를 무너뜨리고 세워진 새 왕조였다. 개국 세력은 군사력과 정치적 승리만으로 왕조의 정통성을 설명할 수 없었다. 새 왕조가 하늘의 뜻, 곧 천명을 받았다는 논리가 필요했다.
태조가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제작하게 한 행위는 이러한 정치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하늘의 별과 질서를 새 왕조의 석판에 새기는 것은 조선이 하늘의 명을 받아 새로운 시간과 질서를 열었다는 상징이 될 수 있었다.
국가유산청과 국립고궁박물관은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제작 목적을 조선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고 건국이 하늘의 뜻에 따른 것임을 알리는 행위와 연결해 설명한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국립고궁박물관 「과학문화」)
천문도의 제작은 과학과 정치 중 어느 쪽이었을까?
천상열차분야지도를 과학 유물 또는 정치적 상징 가운데 하나로만 규정하면 그 성격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천문도에는 별의 위치와 천문 좌표, 적도와 황도, 28수의 도수처럼 실제 천문 지식이 들어 있다. 동시에 하늘의 구역을 지상의 나라와 연결한 분야 체계와 왕조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제작 경위도 포함되어 있다.
당시에는 천문 관측, 역법, 점성적 해석, 왕권이 현대처럼 서로 완전히 분리된 분야가 아니었다. 따라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관측 지식과 우주론, 국가 통치 이념이 한데 결합된 유물로 이해해야 한다.
3.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어떻게 제작되었을까?
제작 시기는 왜 1395년으로 알려졌을까?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은 공식적으로 조선 태조 4년인 1395년에 제작된 유물로 분류된다. 천문도 아래에 새겨진 권근의 글에 명나라 연호인 홍무 28년 12월에 천문도를 돌에 새겼다는 제작 경위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 공공기관 자료도 이를 기준으로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의 제작 시기를 1395년으로 표시한다.
그러나 현존하는 각석이 실제로 1395년에 완성된 것인지를 둘러싼 학술적 논쟁은 남아 있다. 『제가역상집』 등에는 세종 15년인 1433년에 천문 수치를 수정하고 천문도를 돌에 새겼다는 취지의 기록이 전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태조대에 천문도의 기본 도설과 제작 계획이 마련되고, 세종대에 수치가 수정되면서 현재의 석각이 완성되거나 다시 새겨졌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견해도 있다. 반면 권근의 발문과 전통적인 유물 편년을 근거로 태조 4년 제작을 받아들이는 설명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문화유산의 공식 제작 연도는 1395년이라고 설명하되, 현존 석각의 구체적인 완성 과정과 시점에는 학술적 논쟁이 있다는 사실을 함께 밝히는 것이 적절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누가 제작에 참여했을까?
천상열차분야지도 제작에는 조선 건국에 참여한 문신과 천문 업무를 담당한 관원들이 참여했다.
제작을 주도한 인물로는 권근과 유방택이 대표적으로 언급된다. 권근은 천문도 아래쪽의 설명문과 제작 취지를 정리한 인물이며, 유방택은 고려 말과 조선 초의 천문 지식에 밝았던 관리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설경수 등 여러 인물이 제작에 참여했다.
자료에 따라 태조의 명을 받은 인원을 “권근·유방택 등 11명의 천문학자”라고 설명하기도 하고, 권근을 포함하여 총 12명의 참여자로 정리하기도 한다. 이러한 숫자의 차이는 권근을 제작진 인원에 포함하는 계산 방식 등에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확히 11명만이 제작했다”거나 “모두 오늘날 의미의 전문 천문학자였다”고 단정하기보다는, 권근을 중심으로 유방택·설경수 등 문신과 천문 업무 관계자들이 참여했다고 설명하는 편이 안전하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고구려 천문도를 바탕으로 만들었을까?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새겨진 제작 경위에 따르면, 이전 왕조에서 전해지던 석각 천문도의 인본, 즉 탁본 또는 복사 자료가 조선 태조에게 바쳐졌다고 한다.
전승에서는 그 원래 석각이 전쟁 중 강에 빠져 사라졌으며, 남아 있던 인본을 이용하여 새 천문도를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이 선행 천문도는 흔히 고구려의 석각 천문도로 소개된다.
그러나 현존하는 고구려 석각 천문도 원본은 없으며, 그 원본이 언제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직접 보여 주는 고구려 당대 자료도 남아 있지 않다. 권근의 발문에도 선행 천문도를 고구려 천문도라고 직접 명시한 표현은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실제 고구려 천문도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했다고 확정하기는 어렵다. 선행 천문도의 기원을 고구려로 보는 견해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고려시대 천문도였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연구도 있다.
현재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조선 초기의 제작자들이 이전 시대에서 전해진 오래된 천문도 인본을 입수했고, 그것을 새 천문도의 중요한 근거로 삼았다고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천문연구원 「컴퓨터로 재현한 천상열차분야지도」)
(서울대학교 S-Space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나타난 역사계승의식」)
오래된 천문도를 그대로 베껴 새겼을까?
제작 경위에 따르면 조선의 관원들은 오래된 성도를 그대로 복사하지 않았다.
선행 천문도는 제작된 지 오래되어 별의 위치에 오차가 있었기 때문에, 조선의 관원들이 새로 관측하고 계산한 결과를 반영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았다고 전한다. 이는 적어도 조선 초기의 제작자들이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단순 복제품이 아니라 이전 천문도를 계승하면서 일부를 교정한 새 천문도로 인식했다는 뜻이다.
다만 어떤 별을 새로 관측했고, 각각의 위치를 얼마나 수정했는지 보여 주는 완전한 관측 원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모든 별의 위치를 조선에서 처음부터 다시 측정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국립고궁박물관 「과학문화」)
(한국천문연구원 「컴퓨터로 재현한 천상열차분야지도」)
별을 돌에 새기는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구체적인 작업 순서를 모두 기록한 제작 일지는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석각의 형태를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단계가 필요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용할 성도와 천문 자료를 정리한다.
별의 위치와 성관 연결선을 배치한다.
적도·황도·주극원·28수 구획을 그린다.
천문도 주변에 설명문과 수치를 배치한다.
전체 구성을 돌 표면에 옮긴다.
별·선·글자를 깊이와 크기를 달리해 새긴다.
잘못 새긴 부분이나 누락된 부분을 확인한다.
그러나 이는 석각 제작의 일반적인 성격과 유물의 구조를 바탕으로 정리한 작업 과정이다. 각 단계에 어떤 장인과 관원이 참여했고, 실제로 어떤 도구와 원본 도안을 사용했는지는 사료가 충분하지 않아 세밀하게 복원하기 어렵다.
4. 석각 천문도에는 무엇이 새겨져 있을까?
대표적인 앞면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의 대표적인 앞면은 크게 윗부분의 원형 천문도와 아랫부분의 설명문으로 나눌 수 있다.
윗부분에는 북극을 중심으로 한 원형의 성도가 배치되어 있다. 그 주변과 아래에는 해와 달의 운행, 28수, 분야, 천문도의 제작 경위 등을 설명하는 글과 수치가 새겨져 있다.
즉, 별자리 그림만 떼어 놓고 보면 앞면 천문도의 절반만 보는 셈이다. 천문도 아래의 글은 별자리 그림을 어떤 천문학적·정치적 의미로 이해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각석의 반대쪽 면에도 별도의 천문도가 새겨져 있다. 따라서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전체”와 “대표적으로 소개되는 앞면의 천문도”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한국천문연구원 「국보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의 3차원 스캔」)
원형 천문도에는 몇 개의 별이 있을까?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원형 성도 안에는 일반적으로 1,467개의 별이 새겨진 것으로 설명된다. 일부 안내 자료에서는 약 1,460개라고 둥글려 표현하기도 한다.
별의 수를 셀 때에는 마모된 점, 새김이 희미한 부분, 별과 글자 또는 흠집을 구별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자료에 따라 숫자가 약간 다르게 소개되는 경우가 있으나, 학술·전시 자료에서는 1,467개가 널리 사용된다.
이 별들은 오늘날 국제적으로 사용하는 88개 별자리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통 천문학의 여러 성관에 속한다.
(한국천문연구원 「컴퓨터로 재현한 천상열차분야지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모든 별을 하나의 크기로 새기지 않았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은 모두 같은 크기와 깊이로 새겨지지 않았다. 눈에 밝게 보이는 별은 상대적으로 크거나 깊게, 어두운 별은 작거나 얕게 표현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표현은 현대 성도에서 별의 밝기를 점의 크기로 구분하는 방식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 크기를 현대의 정확한 등급 체계와 곧바로 일대일 대응시켜서는 안 된다.
석재의 마모 상태와 새긴 사람의 판단, 제작 과정의 차이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별의 크기는 밝기 차이를 표현한 중요한 요소이지만, 현대 광도 관측값처럼 정밀한 수치 자료로 볼 수는 없다.
별을 연결한 선은 실제 하늘에 있는 선일까?
천문도에서는 여러 별을 선으로 연결해 하나의 성관을 나타낸다. 그러나 실제 밤하늘에 별과 별 사이를 잇는 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연결선은 별의 무리를 구분하고 성관의 형태를 알아보기 쉽게 만든 도식이다. 오늘날 별자리 그림에서 별 사이에 가상의 선을 긋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동아시아 성관은 서양 별자리와 영역 및 구성 방식이 다르다. 하나의 서양 별자리 안에 여러 동양 성관이 들어가기도 하고, 하나의 동양 성관이 여러 서양 별자리에 걸치기도 한다.
천문도 아래의 글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석각 아래쪽에는 단순한 유물 제작 명단만 새겨진 것이 아니다.
천문도 제작 경위와 함께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천문과 역법의 중요성
해와 달의 운행
천체의 주기와 도수
28수와 분야에 관한 설명
옛 천문도를 얻게 된 과정
오래된 성도를 교정한 이유
태조가 천문도 제작을 명한 배경
제작에 참여한 인물과 관직
이 설명문을 통해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어떤 목적과 논리 아래 제작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별자리 그림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새 왕조의 역사 계승 의식과 천문관도 이 부분에 드러난다.
5. 천문도 속 별과 선은 무엇을 뜻할까?
중심에는 북극이 있다
원형 천문도의 중심은 하늘의 북극이다.
밤하늘의 별들은 지구의 자전 때문에 북극 주변을 도는 것처럼 보인다. 북극에 가까운 별은 한반도에서 지평선 아래로 지지 않고 밤새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전통 천문학에서는 이 움직이지 않는 듯한 하늘의 중심을 천제와 황궁의 자리로 해석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이러한 북극 중심의 하늘을 평면의 원 안에 펼쳐 놓았다. 중심 부근에는 자미원과 북극 주변 성관들이 배치되고, 바깥쪽으로 갈수록 계절에 따라 떠오르고 지는 별들이 나타난다.
주극원은 무엇일까?
북극을 중심으로 그려진 작은 원은 일반적으로 주극원(週極圓)이라고 설명한다.
주극원은 관측지에서 지평선 아래로 지지 않고 항상 볼 수 있는 주극성의 범위와 관련된 원이다. 그 크기는 관측지의 위도와 연관된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주극원은 한양 부근에서 지평선 아래로 지지 않는 별의 범위를 반영한 것으로 설명된다. 다만 석각의 투영법과 복각 과정, 측정 오차를 고려해야 하므로 주극원의 지름만으로 정확한 관측 위도를 단순 계산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적도는 무엇을 나타낼까?
천문도에 그려진 적도권은 지구의 적도를 하늘까지 확장한 천구의 적도를 나타낸다.
적도는 하늘을 남쪽과 북쪽으로 나누는 천문 좌표의 기준이다. 전통 천문학에서도 별의 위치와 28수의 폭을 설명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사용되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 적도는 북극을 중심으로 한 원 형태로 나타난다. 다만 평면에 천구를 투영했기 때문에 실제 하늘에서 보이는 모습과 완전히 같은 비례로 그려진 것은 아니다.
황도는 무엇을 나타낼까?
황도는 태양이 1년 동안 별자리 사이를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길이다. 실제로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면서 나타나는 겉보기 경로이다.
황도 부근에서는 달과 주요 행성의 이동도 관찰된다. 따라서 황도는 역법과 행성 관측에서 중요한 기준이었다.
지구의 자전축이 공전 궤도면에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적도와 황도는 서로 기울어진 상태로 두 지점에서 교차한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도 적도와 황도는 단순한 동심원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경로를 이루며 교차하도록 표현된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전통 별자리」)
28수의 구역은 같은 크기일까?
천문도 바깥에는 28수의 명칭과 도수가 배치되어 있다. 28수는 적도 부근의 하늘을 스물여덟 구역으로 나눈 전통 체계이다.
그러나 28수는 원을 정확히 같은 각도로 28등분한 체계가 아니다. 각 수는 기준별인 거성(距星)을 바탕으로 정해졌으며, 거성 사이의 간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각 구역의 폭도 불균등하다.
천문도에서 북극과 각 수의 거성을 잇는 방사형 선 역시 똑같은 간격으로 놓이지 않는다. 현대적인 도식에서 보기 좋게 28개의 동일한 부채꼴로 그리면 실제 전통 체계와 달라진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전통 별자리」)
28수와 사신은 어디에 있을까?
28수는 일곱 개씩 네 무리로 나뉘어 동방 청룡·북방 현무·서방 백호·남방 주작과 연결된다.
| 방위 | 사신 | 소속된 7수 |
|---|---|---|
| 동방 | 청룡 | 각·항·저·방·심·미·기 |
| 북방 | 현무 | 두·우·여·허·위·실·벽 |
| 서방 | 백호 | 규·루·위·묘·필·자·삼 |
| 남방 | 주작 | 정·귀·유·성·장·익·진 |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네 동물의 모습을 거대한 그림으로 직접 그린 사신도라기보다, 각각의 사신에 대응하는 28수와 그 주변 성관을 천문학적 구조 안에 배치한 성도이다.
따라서 천문도에서 청룡이나 백호의 사실적인 몸체를 찾으려 하기보다, 각 방위에 속한 일곱 수의 배열을 확인하는 편이 적절하다.
분야는 왜 하늘과 땅을 연결했을까?
전통 천문학의 분야는 하늘의 구역을 지상의 나라나 지역에 대응시킨 체계이다.
예를 들어 하늘의 어떤 구역에서 혜성이나 객성 같은 이변이 나타나면, 그 구역에 대응하는 지상 지역에 정치적·군사적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러한 분야 체계는 현대 과학에서 인정되는 천체와 지상 사건의 인과관계가 아니다. 천문 현상을 국가와 지역의 운명에 연결했던 전통 점성술의 일부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분야가 단순한 미신적 장식이 아니었다. 국가가 천문 현상을 보고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활용한 지식 체계였기 때문에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제목과 설명에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종대부는 조선에서 새로 만든 성관일까?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종대부(宗大夫)라는 성관이 나타난다. 종대부는 천시원 안에서 왕실 친족과 관련된 성관 부근에 배치된 네 별의 성관으로 설명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종대부를 중국 천문도에서는 찾기 어려운 조선 고유의 별자리로 설명한다. 후대 일본의 천문학자 시부카와 하루미가 조선 천문도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천문도에 종대부를 포함한 사례도 전한다.
다만 종대부를 누가 정확히 언제 창안했고, 태조의 어떤 왕실 구성원을 직접 상징하도록 만들었는지를 보여 주는 제작 기록은 충분하지 않다. 명칭과 배치, 다른 천문도와의 비교를 통해 조선에서 추가한 성관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6. 태조본과 숙종본은 어떻게 다를까?
왜 숙종 때 다시 새겼을까?
태조본은 조선 전기까지 전해졌으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한동안 행방을 확인하기 어려워졌다. 이후 숙종대에 다시 발견되었을 때에는 석면의 마모가 심해 별과 글자를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였던 것으로 설명된다.
이에 숙종 13년인 1687년, 기존 태조본의 천문도와 설명문을 새로운 돌에 다시 새긴 복각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이 제작되었다.
숙종본은 새로운 서양식 천문도로 완전히 교체한 유물이 아니다. 태조본의 천문도와 권근의 설명문을 기본적으로 다시 새긴 것이다.
이러한 복각은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조선 전기 한때의 유물로 잊힌 것이 아니라, 조선 후기에도 국가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공식 천문도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복각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천상열차분야지도」)
두 천문도의 기본 내용은 같은가?
태조본과 숙종본에는 기본적으로 같은 원형 천문도와 1,467개의 별, 권근의 설명문이 들어 있다.
숙종본은 태조본을 복각했기 때문에 별자리 체계와 전체 배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숙종본을 17세기의 최신 관측 결과로 전면 수정한 새 성도라고 설명해서는 안 된다.
다만 석재의 크기와 두께, 별과 글자의 크기 및 새김 상태 등에는 차이가 있다. 숙종본은 태조본보다 제작 시기가 늦고 보존 상태가 좋아 세부 내용을 비교적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복각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크기와 석재는 어떻게 다를까?
우리역사넷의 설명에 따르면 숙종본은 태조본보다 폭과 높이가 약간 작지만 두께는 훨씬 두껍다. 두께를 늘려 석재가 무게를 안정적으로 지탱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 구분 | 태조본 | 숙종본 |
|---|---|---|
| 제작 시기 | 공식적으로 1395년 | 1687년 |
| 성격 | 조선 건국 초기의 원 석각 | 태조본을 바탕으로 한 복각 |
| 천문도 내용 | 1,467개의 별과 설명문 | 기본적으로 태조본과 동일 |
| 보존 상태 | 표면 마모가 큼 | 상대적으로 양호 |
| 석재 특징 | 숙종본보다 얇음 | 폭·높이는 조금 작고 두께는 더 두꺼움 |
태조본의 공식 제작 시기는 1395년이지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현존 석각의 구체적인 완성 시점을 세종대로 보는 학술적 견해가 있다는 점은 별도로 고려해야 한다.
정확한 치수는 유물 조사 방식과 안내 자료에 따라 표시 단위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비교할 때에는 동일한 기관의 측정값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숙종본은 태조본의 완벽한 복사본일까?
기본 내용은 같지만 완전히 동일한 복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돌의 크기와 비례가 달라지면 글자와 도형을 옮기는 과정에서 간격과 크기가 달라질 수 있다. 별점의 크기와 새김 깊이, 글자의 형태에도 제작 시기의 차이가 반영된다.
따라서 연구에서는 두 석각의 별 위치와 도형, 글자를 직접 비교한다. 일부 차이가 발견된다고 해서 반드시 숙종대에 천문학적 내용을 의도적으로 수정했다고 볼 수는 없다. 복각 과정의 오차나 석재의 조건도 고려해야 한다.
목판본과 필사본도 있었을까?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돌에만 남은 것이 아니다. 천문도를 보급하거나 교육에 이용하기 위해 종이에 옮긴 필사본, 석각의 탁본, 목판 인쇄본 등이 제작되었다.
1571년에는 태조본의 천문도와 글을 목판에 새겨 종이에 찍은 자료가 제작되었다. 국립고궁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관상감은 목판본 120점을 제작하여 일정한 관등 이상의 문신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1687년 숙종본이 제작된 뒤에는 숙종본의 탁본과 이를 바탕으로 한 자료도 만들어졌다. 조선 후기에는 전통 천문도와 서양식 천문도를 한 병풍 안에 함께 배치한 신·구법천문도도 나타났다.
이는 천상열차분야지도가 한 번 돌에 새긴 뒤 움직이지 않은 유물이 아니라, 탁본·필사·목판 인쇄를 통해 계속 복제되고 학습된 천문 지식이었음을 보여준다.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과학문화』 「천상열차분야지도 목판본」)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천상열차분야지도」)
7.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지닌 역사적 의미
동아시아 전통 천문 지식을 집약한 자료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삼원과 28수, 수많은 성관, 적도와 황도, 주극원, 분야 체계가 함께 표현되어 있다.
이는 조선 초기의 천문학자들이 동아시아 전통 천문 체계를 이해하고 국가의 공식 천문도로 정리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다만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들어 있는 모든 지식이 조선에서 처음 발명된 것은 아니다. 상당 부분은 중국을 중심으로 발달한 동아시아 천문학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중요한 점은 조선이 그 전통을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래된 성도를 교정하고 종대부 같은 지역적 요소를 포함하며 자국의 공식 천문도로 다시 구성했다는 데 있다.
조선의 시간과 역법 통치를 상징한 유물
왕조가 하늘을 관찰하고 달력과 절기를 백성에게 알려 준다는 관상수시의 원칙은 전통 국가의 중요한 통치 이념이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실제 시간을 직접 알려 주는 시계나 매년 사용하는 달력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늘의 전체 구조와 천문 지식을 국가가 정리하여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 기준이었다.
이후 세종대에 간의대와 혼의·혼상·규표·자격루 등 다양한 천문·시간 측정 시설이 제작된 흐름을 생각하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이 건국 초기부터 천문과 역법을 국가 체계 안에 편입하려 했음을 보여 주는 출발점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왕조 교체를 역사 계승으로 설명한 기념물
조선은 고려를 무너뜨리고 등장했지만, 천문 지식까지 완전히 새롭게 시작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제작 경위는 이전 시대의 오래된 천문도를 계승하면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새 왕조의 석각으로 다시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이는 조선이 과거의 지식과 역사를 이어받으면서도 새로운 질서를 세웠다는 논리와 연결된다.
특히 선행 천문도를 고구려와 연결하는 해석은 조선이 중국의 천문 지식만 받아들인 국가가 아니라 한반도의 오래된 천문 전통을 계승했다는 역사 인식을 보여 주는 것으로 연구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성도의 기원과 관측 연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으므로, 이러한 계승 의식을 곧바로 천문학적 사실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서울대학교 S-Space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나타난 역사계승의식」)
과학 자료와 문화 자료의 성격을 함께 지닌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별의 위치와 밝기, 전통 좌표 체계를 연구할 수 있는 과학사 자료이다. 동시에 조선의 국가 이념과 왕권, 역사 계승 의식을 보여 주는 정치사·사상사 자료이기도 하다.
또한 별자리의 이름과 천상 세계의 구조를 통해 동아시아 사람들이 하늘에 인간 사회의 질서를 투영한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천제의 궁궐인 자미원, 조정인 태미원, 시장인 천시원, 네 방위를 지키는 사신과 28수는 당시 우주관과 사회관이 분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현대적인 천문학 데이터로만 평가하거나, 반대로 왕권을 선전하기 위한 상징물로만 평가하는 것은 모두 불충분하다.
세계적으로도 오래된 석각 천문도인가?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현존하는 오래된 석각 천문도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중국 남송대 순우천문도에 이어 현존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석각 별자리 지도로 소개한다.
다만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천문도”라고만 표현하면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 고대의 천문 그림과 별자리 도상, 종이나 무덤 벽화에 남은 성도까지 모두 포함하면 더 오래된 사례가 존재한다.
따라서 “현존하는 석각 천문도 가운데 세계적으로 매우 오래된 사례” 또는 “순우천문도에 이어 오래된 석각 성도”라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편이 정확하다.
후대의 천문학에도 영향을 주었을까?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안에서 탁본·필사본·목판본으로 전해졌으며, 교육과 천문 지식의 보존에 활용되었다.
조선의 천문 지식은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천문학자 시부카와 하루미가 제작한 천문도에는 중국 천문도에서 보기 어려운 종대부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조선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영향을 보여 주는 사례로 설명된다.
다만 일본의 전통 천문학 전체가 천상열차분야지도 하나에서 비롯되었다고 과장해서는 안 된다. 일본은 중국 천문학과 서양 천문학, 자체 관측을 함께 수용했고, 조선 천문도는 그 가운데 하나의 중요한 영향이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오래된 별자리 자료를 보존한 석각인 동시에 새 왕조가 하늘의 질서와 앞선 시대의 지식을 계승하고 있음을 선언한 국가 기념물이었다. 이 유물 안에서는 관측 지식, 전통 우주론, 왕권과 역사 계승 의식이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과학 유물이나 정치적 상징 가운데 어느 하나로만 설명하기보다 두 성격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8. 사실 검증 및 주의할 점
1. 천상열차분야지도는 1395년에 만들어졌는가?
공식적인 문화유산 제작 연도는 1395년이다.
권근의 글에는 태조 4년인 홍무 28년 12월에 천문도를 돌에 새겼다는 제작 경위가 적혀 있으며, 국가유산청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이를 기준으로 유물의 제작 시기를 1395년으로 표시한다.
다만 『제가역상집』 등에는 세종 15년인 1433년에 천문 수치를 수정하여 돌에 새겼다는 취지의 기록이 전한다. 이 때문에 태조대에 기본 도설이 만들어지고 세종대에 현재의 각석이 완성되거나 다시 새겨졌다고 보는 학술적 견해도 있다.
따라서 1395년이라는 공식 연대를 사용하되, 현존 석각의 구체적인 완성 과정과 시점은 완전히 해결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함께 밝혀야 한다.
2. 태조가 직접 별을 관측하고 천문도를 그렸는가?
그렇지 않다.
태조는 천문도 제작을 명한 국왕이다. 실제 성도 정리와 설명문 작성, 석각 제작에는 권근·유방택·설경수 등 문신과 천문 업무 관계자, 석공이 참여했다.
태조가 직접 별의 위치를 측정하거나 돌에 그림을 새겼다는 기록은 없다.
3. 제작 인원은 정확히 11명인가, 12명인가?
자료의 계산 방식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일부 자료는 권근·유방택 등 11명의 천문학자에게 제작을 명했다고 설명한다. 다른 자료는 권근을 포함한 제작 참여자를 모두 합해 12명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숫자만 단정하기보다 권근과 유방택을 중심으로 여러 문신과 천문 관계자가 참여했다고 쓰는 편이 안전하다.
4. 고구려 천문도 원본이 현재 남아 있는가?
남아 있지 않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제작 경위에는 이전 시대의 석각 천문도 인본이 전해졌다고 적혀 있다. 이 자료는 흔히 고구려 천문도의 탁본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고구려 석각 천문도 원본은 현존하지 않으며, 조선에 전달된 인본도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권근의 발문에는 선행 천문도가 고구려의 것이라고 직접 적혀 있지 않다.
따라서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고구려 천문도를 정확히 그대로 복제했다고 입증할 수는 없다.
5.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은 모두 고구려 때 관측한 것인가?
확정할 수 없다.
성도의 별 위치를 분석해 관측 연대를 추정하려는 여러 연구가 있었지만 연구 방법과 대상 별에 따라 결론이 다르다.
또한 제작 기록은 오래된 성도를 새 관측에 따라 교정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성도 안에는 여러 시대의 자료와 수정 결과가 함께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모든 별이 하나의 특정 시대에 한 장소에서 관측되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6. 각석에는 한 면에만 천문도가 새겨져 있는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소개되는 원형 성도와 권근의 글은 대표적인 앞면에 새겨져 있다. 그러나 3차원 정밀 조사 결과 반대쪽 면에도 또 다른 천문도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각석 전체를 설명하면서 “한 면에만 천문도가 새겨졌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다만 반대쪽 천문도의 정확한 제작 시기와 성격은 대표적인 앞면과 구분하여 검토해야 한다.
7. 1,467개의 별은 모두 현재 정확히 확인되는가?
1,467개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숫자이다.
그러나 태조본은 표면이 마모되었으며 일부 점과 선이 희미하다. 조사 방법에 따라 작은 흔적을 별로 판단하는 문제도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대중적인 글에서는 1,467개라고 쓰되, 정밀 조사에서는 석각 상태와 판독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8. 별의 크기는 현대의 별 등급과 정확히 일치하는가?
그렇지 않다.
별을 크기와 깊이가 다르게 새겨 밝기 차이를 나타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를 현대 천문학의 1등성·2등성·3등성 체계와 정확히 대응시킬 수는 없다.
석각의 마모, 새긴 사람의 판단, 제작상의 차이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9. 황도와 적도는 서로 만나지 않는 동심원인가?
아니다.
적도와 황도는 서로 기울어져 있으며 두 지점에서 교차한다. 지구의 자전축이 공전 궤도면에 대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단순화해 그릴 때 황도와 적도를 서로 만나지 않는 동심원으로 표현하면 천문학적으로 부정확하다.
10. 28수는 원을 똑같이 28등분한 것인가?
아니다.
28수의 각 구역은 기준별인 거성을 바탕으로 정해졌으며 폭이 서로 다르다. 천문도에서 28수 구획을 동일한 각도의 부채꼴로 그리면 실제 체계와 달라진다.
11. 주극원은 단순한 장식 원인가?
아니다.
주극원은 관측지에서 지지 않는 별의 범위와 관련된 천문학적 의미를 가진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주극원은 한양 부근의 관측 조건을 반영한 것으로 설명된다.
다만 천문도의 투영법과 석각의 측정 오차를 고려하지 않고 원의 크기만으로 정확한 관측 위도를 단순 계산해서는 안 된다.
12. 종대부는 확실한 조선 고유 별자리인가?
조선 고유 성관으로 널리 해석된다.
중국계 천문도에서 찾기 어려우며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그 영향을 받은 일본 천문도에 나타난다는 점이 근거이다.
그러나 종대부의 정확한 창안자와 제작 시점, 구체적으로 어떤 왕실 인물을 상징했는지는 사료가 부족해 확정하기 어렵다.
13. 숙종본은 17세기 하늘을 새로 관측해 만든 천문도인가?
그렇게 보기 어렵다.
1687년 숙종본은 다시 발견된 태조본의 내용과 권근의 설명문을 새로운 돌에 다시 새긴 복각본이다. 별과 글자의 표현, 석재 크기에는 차이가 있지만, 전면적인 새 관측을 반영한 별개의 최신 성도는 아니다.
14.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천문도인가?
표현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천상열차분야지도보다 오래된 천문 그림과 성도는 존재한다. 공공기관의 설명은 중국 순우천문도에 이어 현존하는 오래된 석각 별자리 지도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범위를 생략하고 모든 종류의 천문도 가운데 세계 두 번째라고 단정하면 부정확하다.
검증 결과
본문은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국립고궁박물관,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천문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관련 학술자료를 중심으로 대조하였다.
검증 과정에서는 다음과 같은 과장을 피했다.
태조가 직접 별을 관측해 천문도를 그렸다는 주장
공식 제작 연도인 1395년과 현존 각석의 완성 시점에 관한 학술적 논쟁을 혼동하는 설명
고구려 석각 천문도 원본이 현재 남아 있다는 주장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고구려 천문도를 그대로 복제했다는 주장
각석의 한 면에만 천문도가 새겨져 있다는 주장
1,467개의 별이 모두 한 시대에 조선에서 새로 관측되었다는 주장
별점 크기가 현대의 정확한 등급 수치와 일치한다는 주장
28수가 동일한 각도로 나뉘었다는 주장
숙종본이 17세기의 최신 관측으로 전면 개정된 천문도라는 주장
종대부의 창안 과정이 문헌으로 완전히 확인된다는 주장
모든 종류의 천문도 가운데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되었다는 주장
현재 확인한 자료의 범위에서 본문에 명백한 허위로 판단되는 내용은 남기지 않았다.
다만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성도가 어떤 시대의 관측 자료를 얼마나 포함하고 있는지, 선행 천문도가 실제로 어느 시대에 제작되었는지, 1395년의 도설과 1433년의 석각 기록이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인지, 반대쪽 면의 천문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새겨졌는지는 계속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문제는 새로운 판독과 천문 계산, 문헌 연구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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